중앙일보 칼럼: 성숙한 한인 사회를 바라며

민족학교 김주환 이사 (중앙일보 5월 18일자 칼럼)

내가 속해있는 교회가 한인타운 6가에 있을 때, 교회 앞에 홈리스 몇 분이 살고 있었다. 매 주 달걀을 삶아 주시는 권사님도 있었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가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얘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예상과는 다른 홈리스들의 반응에 당황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예를 들어, 홈리스들은 아무 음식이나 주면 고맙다고 다 받아 먹을 줄 알았는데, 입맛에 안 맞는 건 싫다고 거부를 한다든지 하는 반응이다. 사람들마다 홈리스들에 대한 특이한 경험도 있고 편견도 가지고 있다. 어떤 한국 분들은 홈리스들을 예전 한국에서 생각하듯 땅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는 거지로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홈리스라고 하면 알콜 중독자나 정신병자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홈리스를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가 찻길이나 주유소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길을 가다가 이상한 사람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놀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인타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홈리스들이 살고 있다.

작년인가 한인타운의 학교 선생님으로 계신 집사님께서 학교에 차 안에서 생활하며 옷도 빨아 입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는 한인 학생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고 안타깝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아내가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했던 언니를 만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홈리스가 되어 있어 크게 놀란 일도 있다. 아내가 도와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기관과 안전한 주거 공간이 부족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없다고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홈리스를 도와주는 한인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신 교우 분도 있다.

솔직히 바쁜 생활에 치이다 보니 이번 한인타운 임시 홈리스 주거 공간이 어떤 과정으로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정책이 올바른 과정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고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걱정하는 이유일까?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또 각종 사고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져 홈리스가 됐을 우리의 이웃을 돌아 본 적이 있던가? 혹시 그냥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들이 우리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주위를 잘 안돌아 봤을 뿐이지 이미 한인타운에는 400여명의 홈리스들이 살고 있고 홈리스 텐트들은 이미 한인타운 곳곳에 있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LA 한인 커뮤니티는 각종 이민 이슈를 앞에서 이끌고 시의원을 배출시킬 정도로 정치력을 키웠다. 또 한인 커뮤니티는 기독교를 포함 신실한 종교인들이 많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직도 우리 마음에 4.29의 상처가 자리잡고 있어 ’우리 커뮤니티를 무시하지 말라’는 주장이 마음에는 더 와닿을런지는 몰라도 이제는 그보다는 더 성숙한 주장을 할 때가 아닐까? LA시 당국에 홈리스 여성들과 홈리스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의 안전문제를 확실히 해달라고, 홈리스 재활 프로그램을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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